태권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 및 과제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이 다시 한 번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와 문화·체육계,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지원위원회를 가동하고, 남북 공동·범세계 협력까지 염두에 둔 복합 전략을 예고하면서 태권도의 위상을 국제 표준으로 공인받기 위한 준비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움직임은 태권도가 단순한 경기 종목을 넘어 한류 문화 자산이자 세계 시민이 함께 즐기는 생활 무형유산으로 격상될 토대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등재 추진의 배경과 상징성

첫째, 태권도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스포츠 자산입니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서의 국제성, 전 세계 2억 명에 이르는 수련 인구로 추정되는 대중성, 품새와 겨루기·예절·인성교육을 아우르는 공동체적 가치가 결합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실질적 세계유산’과 ‘형식적 공인’ 사이의 간극이 존재해 왔습니다. 이번 등재 추진은 그 간극을 해소하고, 태권도에 내재된 공동체성과 평화·상생의 가치를 국제사회가 공유할 수 있도록 공적 지위를 부여받으려는 시도입니다. 둘째, 등재 추진은 단지 문화적 위신을 높이는 문제를 넘어, 글로벌 규범과 교육 콘텐츠 확장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은 ‘보호’와 ‘전승’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즉, 태권도의 기술 체계뿐 아니라 도장 교육의 의례와 용어, 지역별 수련 공동체의 생활문화, 사범 양성 체계까지 기록·보전 대상이 됩니다. 이는 태권도 교육과정의 표준화·다양화가 균형을 이루도록 돕고, 도장·학교·연수기관이 국제적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전승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합니다. 셋째, 남북 및 국제 연대의 촉매제라는 상징성도 큽니다. 태권도는 남측(국기원·세계태권도연맹)과 북측(조선태권도위원회)으로 경쟁·공존해 온 독특한 역사를 지닙니다. 무형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 남북이 기술·서사·사료를 함께 정리한다면, 분단 이후 단절된 문화의 공통근원을 복원하는 문화외교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 각지의 태권도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다자 협업 모델’을 구축하면, 태권도는 평화와 화합의 국제 공공재로서 상징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추진 체계와 절차, 무엇을 준비하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는 ‘목록 등재’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공동체 주도의 보호·전승 체계를 갖추는 과정 그 자체가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는 정부·지자체·유관기관·민간단체로 구성된 지원위원회가 가동되며, △현장 조사(도장·학교·연맹·동호회) △무형유산 요소 정의 및 범주화(기술·용어·예절·장비·의례 등) △보호조치계획(교육, 기록화, 아카이브, 전승자 지원, 젠더·포용성·접근성 강화) △위험요인 분석(상업화 일변도·경기 규칙 변화·지역 전승 단절 등) △성과 지표 설정(참여자 수, 교육과정 확산, 기록물·구술 채록량, 국제 협력 프로젝트 수) 등 세부 과업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제 절차 상, 대한민국은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협약 당사국으로서 ‘등재신청서(허가된 양식)’와 첨부 증빙(공동체 동의서, 사진·영상·악보·용어집, 교육 커리큘럼, 디지털 아카이브 계획)을 준비합니다. 신청서는 대개 3~4년의 중장기 일정으로 설계되며, 유네스코 평가기구(평가단체·전문가)의 서면·현장 심사를 거쳐 정부간위원회에서 최종 판단을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주도’하되 ‘공동체가 주체’임을 서류·현장에서 명확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사범·수련생·동호인·여성·장애인·청소년 등 다양한 참여 집단의 자발적 동의와 실질적 참여가 핵심 증거가 됩니다. 한편, 등재 추진과 병행해 ‘기록유산(메모리)’과 ‘교육 프로그램(카테고리 2센터·유네스코 스쿨 네트워크 연계)’도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권도 창시·정립 과정의 구술사 채록, 지역 도장사의 생활사, 품새 음악·掛圖(괘도)·교본의 디지털화, 국제대회가 도시문화에 남긴 흔적 조사 등은 장기적으로 유무형 콘텐츠의 융합 플랫폼을 만드는 밑거름이 됩니다. 또한 학교 체육 및 방과후 교육과 연계한 ‘태권도-시민성 교육’ 모듈을 만들어, 인성·안전·갈등조정·문화다양성 존중 등의 학습목표를 태권도 수련과 접목할 수 있습니다.


과제와 전망, 실효성 있는 ‘보호·전승’으로

첫째 과제는 상업화와 전통성의 균형입니다. 세계 스포츠 산업 속에서 태권도는 경기 규칙·장비·방송 연출이 빠르게 변합니다. 등재 추진은 이러한 현대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형유산 핵심 요소(예의범절·수련 체계·공동체 문화)’를 명확히 정의해 변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 기준을 세우는 작업입니다. 예컨대 도장 수련의 예절·호칭·도복 문화·띠의 의미, 품새의 호흡·동작 연결 원리, 사범-제자 관계의 윤리 등에 대한 공통 원칙을 정리하면, 각 지역 특색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승의 뼈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둘째 과제는 포용성과 접근성입니다. 인류무형유산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장애인·고령자·이주민을 위한 맞춤형 수련 환경,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장학·장비 지원, 농산어촌·저밀도 지역에 대한 이동형 수련 프로그램, 온라인·혼합형 교수법 도입 등이 필요합니다. 특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도자 교육과 도장 인증제 개선은 ‘안전하고 매력적인 생활무형유산’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지름길입니다. 셋째 과제는 국제 공조의 제도화입니다. 세계태권도연맹(WT)·국기원·태권도진흥재단·해외 협회가 개별 사업을 넘어 ‘공동 아카이브·공동 교육 표준·공동 연구’로 연결될 때,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국제 모범사례(굿 프랙티스)’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국제대회는 경기 성과뿐 아니라 ‘무형유산 주간’ 같은 교육·전시·학술 행사를 동시 운영하는 형태로 발전시켜, 대회 개최 도시의 주민이 태권도 문화에 직접 참여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넷째 과제는 지역 균형과 생태계 재편입니다. 수도권·대도시 중심의 수련 인프라에서 벗어나, 지역 도장과 학교체육·생활체육이 결합된 거점 모델을 확산해야 합니다. 지자체가 박물관·도서관·생활문화센터를 활용해 ‘태권도 기록·전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사범과 문화예술인·청소년단체가 협업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유효합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의 자발성과 공공의 지원이 균형을 이루도록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합니다. 전망 측면에서, 이번 추진은 ‘등재 여부’만으로 성패를 가를 사안이 아닙니다. 준비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자료·교육모형·국제 네트워크가 태권도의 10년, 20년 뒤를 지탱할 자산이 됩니다. 등재에 성공한다면 국제 인지도·관광·교육 수요 확대 효과가 뒤따를 것이며, 설령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보호·전승 체계가 현장에서 작동한다면 실질적 성과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핵심은 ‘문서 속 유산’이 아니라 ‘사람 속 유산’입니다. 도장에서, 학교에서, 지역축제와 국제대회에서 수련자가 늘고, 다양성이 존중되며, 안전과 예절이 생활화될 때, 태권도는 진정한 의미의 인류무형유산으로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추진은 대한민국 문화정책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공공·민간의 역할 분담, 증거 기반의 정책 설계, 지역·국제 네트워크를 엮는 실행력, 투명한 예산과 성과관리 등은 유네스코 심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요소입니다. 태권도의 힘은 기술과 기록,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게 있습니다. 등재 추진이 ‘사람을 중심에 둔 보호·전승’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계기가 된다면, 태권도는 국경을 넘어 ‘함께 수련하는 세계 시민의 언어’로서 더 오래, 더 넓게 호흡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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